어느 날 갑자기 싱크대 하부장을 열었는데 묘하게 눅눅한 냄새가 올라왔다. 평소엔 그저 세제나 냄비들을 대충 쌓아두는 공간이라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, 그날따라 아래쪽에 둔 냄비 밑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. 처음에는 그저 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물을 좀 많이 튀겼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닦아내고 말았다. 그런데 다음 날 퇴근해서 확인해보니 똑같이 물이 고여 있는 거다. 이게 단순한 배수관 문제인지 아니면 벽 안쪽에서 터진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아파트 수도 계량기부터 잠가야 하나 한참을 망설였다. 수도를 잠그면 당장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쓰는데, 그걸 무작정 잠그고 업자를 부르기도 애매하고, 그냥 두자니 아래층 천장으로 물이 샐까 봐 덜컥 겁이 났다.
벽수전 교체와 알 수 없는 배관의 정체
결국 고민 끝에 싱크대 벽에서 튀어나온 수전 근처가 범인인 것 같아 설비 업체에 연락했다. 기사님이 오셔서 뚝딱뚝딱 하시는데, 생각보다 작업이 커졌다. 벽 안에 숨겨진 배관 노후가 원인이라나. 아메리칸스탠다드 수전을 새로 사서 교체하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, 막상 뜯어보니 배관 자체가 삭아 있어서 연결 부위를 다 다시 만져야 했다. 비용은 부품값 포함해서 대략 20만 원 중반대로 예상했는데, 배관을 건드리니 추가 비용이 꽤 붙었다. 사실 처음에는 셀프로 싱크대 배수구 세트라도 사다가 갈아볼까 싶어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했는데, 지금 생각해보면 전문가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드나 하는 허탈감이 동시에 든다.
20평대 구축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
우리 집 같은 20평대 구축 아파트는 이사 올 때부터 창호나 배관은 손을 봐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. 그런데 그게 진짜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. PVC 배관값이 요즘 정말 비싸다던데, 자재비 인상이라는 뉴스가 괜히 남의 일 같지 않다. 주방 바닥을 뜯어내고 보니 예전에 살던 사람들이 대충 덧방으로 처리해둔 흔적들이 보여서 더 찜찜했다. 전문가가 말하길, 아파트 하자 보수 기간 끝난 뒤에 터지는 이런 일들은 결국 다 집주인 책임이라고 한다. 관리단에 문의해도 개인적인 배관 문제라며 선을 긋는데,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.
공사를 마쳐도 사라지지 않는 찝찝함
공사를 다 끝내고 나니 물은 더 이상 새지 않는다. 싱크대 아래는 뽀송해졌는데, 왠지 벽 속 어딘가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. 설비 기사님은 이제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, 구축 아파트에서 배관 공사를 한 번 경험하고 나니 집 안 곳곳이 다 시한폭탄처럼 느껴진다. 거실 욕실도 리모델링하려면 500만 원은 족히 든다는데, 지금 당장 당장 물이 새는 건 아니니 그냥 참고 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미리 돈을 들여서 싹 고쳐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.
결국은 비용과의 싸움
공사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. 반나절 정도 걸렸나.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들어간 비용과 정신적인 피로감은 왜 이렇게 큰지 모르겠다. 단순히 돈만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, 언제 어디서 또 물이 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상을 계속 갉아먹는 느낌이다. 예전에는 집이라는 공간이 그냥 쉬는 곳이었는데, 이제는 어디가 터질지 모르는 배관들의 집합체처럼 보인다.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바로 업자를 불러야겠다. 이번엔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고 낑낑대다가 시간만 더 보낸 것 같아서 뒤늦게 후회도 된다. 그렇다고 당장 거액을 들여 전체 배관 공사를 하자니 통장 잔고가 허락하질 않고, 그냥 이 상태로 살다가 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고치기로 마음을 먹었다. 이렇게 조금씩 집을 고치며 사는 게 맞는 건지, 아니면 이사 가는 게 정답인지 아직도 답을 못 내렸다.

물 튀기는 모습이 생각보다 더 걱정스러웠어요. 특히 그 눅눅한 냄새 때문에 더 불안했거든요.